볼티모어 오리올스
1. 개요
MLB의 프로야구단.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소속. 연고지는 볼티모어. 팀명인 오리올스는 꾀꼬리라는 뜻이며, 약자는 O's.
역대 팀 성적 링크
전체적으로 보면 전성기도 잠깐씩 있었지만 10년 이상 연속으로 루징 시즌을 기록한 적이 네 번이나 있었고[6] , 메이저 리그 30개 구단 중 29위[7] 에 해당하는 약팀이다. 볼티모어로 옮긴 이후 타자 친화 구장을 홈으로 쓰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홈런과 장타를 위시하는 화끈한 타격을 바탕으로 한다. 메이저 리그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강자들이 서식하는 알동에서 나름 호성적을 거두기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약팀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다.
2. 역사
3. 이모저모
3.1. 팀명과 관련하여
3개의 구단명을 사용했는데, 모조리 다른 구단들과 구단명이 겹친다는 신기한 구단이다.
밀워키 브루어스는 당연히 현존하는 내셔널리그 팀 밀워키 브루어스와 겹친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는 세인트루이스에 자리를 잡았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한 때 사용하던 구단명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헛갈릴 수 있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타킹스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전신이다.[8]
가장 골치아픈 것이 현존하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인데, 이 팀명을 사용한 구단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메이저리그 구단이 3개, 마이너리그 구단이 2개로 '''전부 다 별개의 구단'''이다. 볼티모어 연고였던 구단들이 이 명칭을 사용한 사례가 많은 것은, 오리올이 볼티모어가 위치한 메릴랜드주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 첫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창단멤버였다가 이후 네셔널리그에 가입한 팀으로, 19세기 팀이다. 1882년 창단, 1899년 해체.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휴 제닝스를 포함하여 1800년대에 활약한 볼티모어 오리올스 선수들은 이 팀에서 뛰었다.
- 두번째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1901년 아메리칸 리그 창립구단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월드시리즈가 열리게 되는 등 아메리칸 리그가 자리를 잡게 되자, 뉴욕에도 아메리칸 리그 구단이 있어야 한다라는 명분으로 뉴욕으로 이동, 뉴욕 하이랜더스가 된다. 이 팀이 바로 현재의 뉴욕 양키스이다.
- 세번째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마이너리그 팀으로, 기존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떠난 1903년에 창단되어, 1914년에 없어졌다. 이 팀은 볼티모어가 고향이었던 베이브 루스가 데뷔한 구단으로 유명한데, 1914년 메이저리그와 붙어보겠다고 창설된 페더럴 리그팀으로 볼티모어 파라핀스가 창단되면서 벌어진 대대적인 경쟁으로 재정적 문제에 직면한 구단주 잭 던이 루스[9] 를 보스턴 레드삭스에 팔았고, 1905년 볼티모어를 떠나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로 이동했다. 하지만 페더럴리그가 엎어지면서 마이너리그 팀 가운데 하나로 다시 전락했고, 2016년 현재도 AAA마이너리그 팀 Syracuse Chiefs로 존재한다.
- 네번째 볼티모어 오리올스도 마이너리그 구단으로 1916년 창단하여, 1956년 없어졌다. 페더럴리그가 2년만에 망하고 볼티모어 연고지에 다시 공백이 생기자, 잭 던이 다시 돌아와서 구단을 만들었다. 이 마이너리그 구단은 레프티 그로브가 20세에 데뷔한 구단으로 유명하다. 잭 던 구단주가 레프티 그로브 만큼은 안 팔려고 했기 때문에 그로브의 메이저리그 데뷔가 상당히 미뤄지는데 큰 공헌을 했다.[10] 이후에도 메이저리그 구단과 별개로 운영이 되었으나, 메이저리그 구단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가 볼티모어로 이전해오면서 버틸 수가 없어지면서 다시 리치몬드로 이전하여 리치몬드 버지니안스가 되었고, 1964년 독자적인 구단운영을 포기하면서 톨레도 머드핸드스로 변했다. 이 팀은 2016년 현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 AAA팀으로 존재한다.
3.2. 아시아와의 인연
대구상원고의 前 투수 김성민을 스카웃하려다가 출입금지를 먹은 구단이기도 하다.
전 단장인 댄 듀켓이 친아시아파이다 보니 볼티모어는 유독(?) 아시아 선수 중에서 투수를 영입하려 많은 공을 들였던 팀이다. 하지만 한국인 선수가 볼티모어에 입단한 사례는 한 어린이가 오기 전까지 없었다.
위에 설명한 대로 단장이 친아시아 성향이 있어서 대만 선수도 영입했다.
우에하라 고지의 MLB 데뷔 팀이 볼티모어였기도 하며 현재 볼티모어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타이완 출신 좌완투수 천웨이인도 있다. 다만 아시아 투수들에게 항상 재미를 보지 못한 적도 있는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출신의 와다 츠요시의 경우 2년 계약을 맺고 나서 바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볼티모어가 큰 손해를 본 채 시카고 컵스로 이적하면서 볼티모어가 새로운 선수와 계약을 할 때 메디컬 테스트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윤석민과 3년 575만불 계약을 맺었으나 메이저도 아닌 트리플 A에서 영 좋지 못한 성적을 보여주어 지명할당 조치를 취했다.
2011 시즌을 마치고 FA를 선언하여 해외 진출을 타진했던 정대현이 류현진보다도 먼저 KBO 리그 사상 첫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직행이라는 선례를 만들 뻔 했던 팀이 볼티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해외 진출이 무산되기도 했다. 2013 시즌 후에는 또 다른 한국인 선수 윤석민이 볼티모어의 문을 두드리면서 과연 볼티모어에서 첫 한국인 투수를 데려올지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데려왔다'''. . 이보다 앞서 동국대를 중퇴한 투수 윤정현과 계약했는데 계약금이 불과 3만 달러여서 사실상 로또를 긁은 것과 마찬가지. 역시나 3년 동안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채 2016시즌이 끝나자 방출되었고 2019년도 신인 2차지명에서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히어로즈)에 지명되었다.
그리고 2015시즌 종료 후 이번에는 FA자격을 취득하고 MLB 진출을 선언한 김현수와 2년 700만$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하였다. 우타 일색인 팀에 좌타 외야수인지라 무난히 입성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김현수는 김현수대로 구단은 구단대로 욕을 들어먹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인은 다시는 볼티모어로 가지 않게 될지도.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김현수가 잘해줌으로써 가능성이 살아날지도?
한국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 중에서 여기에 뛰었던 선수들이 좀 있다. 루크 스캇을 비롯하여 펠릭스 피에, 레다메스 리즈, 브라이언 배스, 조쉬 벨, 하이로 어센시오, 지미 파레디스 등등. 어째 온 선수나 간 선수나 끝이 좋은 선수가 없다.
한국의 야구팬들에게는 2016년 김현수 계약에 대한 이상한 대응으로 과거 정대현 메디컬 테스트, 윤석민 마이너행, 아울러 고졸 유망주 김성민 투수 탬퍼링 등 한국 선수에 대해 좋지 않았던 사건까지 재조명되며 한국팬들한테 양아치 구단이라고 폭풍디스를 받고 있다. 이로써 볼티모어는 텍사스 레인저스를 능가하는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무덤으로 등극했다. 이후 김현수는 백업 플래툰으로 그럭저럭 1년차를 보냈지만 2년차에는 결국 본인 실력과 외부 여러 상황이 겹쳐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를 빙자한 방출을 당해 또 다시 한국인 선수와의 악연을 이어간다.
그런 와중에 2015~2017 3시즌 동안 볼티모어에 소속되었던 타일러 윌슨이 LG 트윈스에 합류했는데 훌륭한 실력과 팀에 융화되는 털털한 성격을 보여주면서 바로 팀의 에이스투수로 자리잡았고 드디어 볼티모어와 한국과의 악연이 끊겼다. 대신에 '''리그 최악'''으로 손꼽히는 LG 트윈스의 물타선이 윌슨의 승리를 지속적으로 날려먹으면서 뭔가 입장이 반대가 되었다.
3.3. 홈 구장
3.4. 영구결번
'''4. 얼 위버(Earl Weaver)''' : 통산 1480승에 리그 우승 3회, 월드 시리즈 우승 1회를 달성하며 1970년대 팀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명장. 명예의 전당에도 이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들어갔다. 작전 구사를 철저히 지양하는 빅볼를 추구하면서도 플래툰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경기를 운영하는 스타일이었다.2013년 1월 19일 카리브 해의 크루즈에서 심근경색으로 타계하였다
'''5. 브룩스 로빈슨(Brooks Robinson)''' : 통산 2,848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공격력도 훌륭한 편이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사기적인 수비 실력. 도저히 그가 지키는 3루 쪽은 뚫을 수 없다는 평까지 나올 정도였다. 볼티모어에서만 23시즌[11] 을 뛰며 1970년대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16번의 골드글러브와 18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팀 최고의 스타.
'''8. 칼 립켄 주니어(Cal Ripken Jr.)''' : 어니 뱅크스의 뒤를 잇는 공격형 유격수로 통산 431홈런에 1695타점, 3184안타를 기록했고, 8번의 실버슬러거와 두 차례 리그 MVP, 19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당대 최고의 스타. 그러나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유격수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기록인 2,632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볼티모어 뿐만 아니라 전 미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슈퍼스타.
'''20. 프랭크 로빈슨(Frank Robinson)''' : 신시내티 레즈에서 버림받는 트레이드를 당해 옮겨왔지만, 여기서 더 맹활약하면서 통산 586홈런을 달성한 한 시대를 풍미한 강타자. 로빈슨의 합류 이후, 팀은 최고 전성기를 열었고, 본인은 양대리그에서 MVP를 수상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여담으로 선수생활 막바지이던 1975년부터 선수 겸 감독을 뛰면서 MLB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되기도 했다.
'''22. 짐 파머(Jim Palmer)''' : 1970년대 야구판의 섹시 스타이자, 볼티모어 역대 최고의 에이스. 볼티모어에서만 20년을 뛰면서 팀에게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겨줬고, 세 차례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1990년 92.6%라는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
'''33. 에디 머레이(Eddie Murray)''' : 행크 애런, 윌리 메이스와 함께 500홈런과 3000안타를 동시에 달성한 선수.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뛰어난 스위치 히터 중 한명이기도 하다.
42.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 전 구단 영구결번.
4. 역대 감독
5. 계약 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5.1. 트리플 A
KBO 리그 한정으로 믿고 쓰는 노폭 타이즈로 유명하다. 이 팀을 거쳐간 한국인 선수로는 구대성(2005), 손혁(2007), 윤석민(2014)이 있다. 다만 구대성과 손혁이 몸 담았을 때에는 뉴욕 메츠 산하의 마이너리그 트리플 A 팀이었다.
구대성의 경우 뉴욕 메츠 소속일 때 잠시 몸 담았었고(2경기), 손혁은 재활 겸 코치 연수로 입단했다가 트리플 A에 도전한 경우이며 부상으로 이내 투수 인스트럭터로 돌아갔다고 한다. 풀타임으로 출전한 경우는 윤석민이 유일하다.
5.2. 더블 A
5.3. 싱글 A
6. 40인 로스터 목록
- 별표 1개(*)는 현재 25인 로스터에 포함돼있지 않은 선수, 별표 2개(**)는 40인 로스터에 포함돼있지 않은 선수
- 각주의 '10-IL'은 10일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선수, '60-IL'은 60일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선수
[1]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사용하던 로고인 '''카툰 버드'''를 리뉴얼해서 쓰고 있다. 흰색 바탕의 카툰 버드를 홈 경기에서 사용하며 검정색 바탕의 카툰 버드는 원정 경기에서 사용한다. 이외에 O's 모자도 사용 중이다.[2] 20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공용[3] 83년까지 NFL 볼티모어 콜츠와 공용, 이후 볼티모어 레이븐스가 사용했었다.[4] 현지 방송사에서는 오리올스의 약자인 O's로 표기되는 경우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실상 볼티모어의 경기를 송출하는 방송사(MASN)에서는 거의 O's 로 표기된다고 봐도 무방.[5] 거포에 환장한 타력덕후로 유명하다.[6] 1909년~1920년, 1929년~1940년, 1946년~1959년, 1998년~2011년[7] 30위는 말하지 않아도 알 그 팀이다.[8] 정확하게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전신인 브라운스 바로 직전에 사용했던 창단 팀명.[9] 루스외에 주전급 선수 2명이 포함된 딜이었다.[10] 레프티 그로브는 1925년에야 필라델피아와 계약하게 된다. 이적료는 베이브루스보다 더 비쌌다.[11] 보스턴 레드삭스의 칼 야스트렘스키와 함께 원클럽맨 선수로서 가장 오래 뛴 기록을 갖고 있다.[10-IL]